‘무사히 귀환해서 다행이다 ’라고 첫구절을 쓰는 나는 정말로 무사한가.
아니 귀환(歸還)이라는 말이 무사(無事)한 것인지,무사(無事)하다는 형용사로부터 귀환(歸還)한 것인지 나는 알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대를 떠나오고 그대를 떠나보낸 일이 나에게는 장대한 하나의 성취감으로 느껴지니,이것만으로도 귀환이니 무사하니 정도의 말은 유용성이 있을듯 싶기도 하다.
여행의 행로가 무척이나 험란했던 것은 사실이다.
무전여행을 떠나는 모험심 많고 호기심 가득 찬 20대 초반의 열정처럼, 그대라는 광활한 사막을 나는 감히 겁도 없이 건너기 시작했으니.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다만 떠나기만 했던 내가이제는 무모하기도 후회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대의 사막에선 무언가를 얻었던 것만 같다.
고되고 사무치는 그 여정에서도, 현재는 이미 끝나버린 추억 앞에서도, 그리고 여독으로 한참이나 더 시달려할 미래에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으나, 내가 찾으려 했던 것이 '그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찾아낸 듯 하다.
타는 듯한 태양과 메마르고 건조한 바람, 날이 저물면 스산하기 이를데 없는 그 추위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신기루를 경험했다. 온전히 그대를 보았다. 손에 닿을듯한 그대를 보고 또 보고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그대의 환영으로부터 절대절명(絶對絶命)의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며, 또 외치며.그것이 나의 갈증을 샘솟게 하고, 오아시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 신비한 체험의 유혹을 쉬이 뿌리칠 수 없었다.
어느쯤에서는 그대의 사막이 드넓은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모래를 헤집으며 깊이 깊이 잠수하는 나도 보았다.
작열하는 태양의 역광으로 날개를 퍼득이는 갈매기도 보았다.
그대의 그 메마르고 건조한 모래알들 사이에서 파도의 절규를 들었고, 소라의 황홀한 노래도 들었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그대의 환영앞에서 나는 다시금 쓰디쓴 선인장 껍질을 씹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오아시스를 보지 못하고 나의 심약한 여행은 막을 내렸지만,
그대의 사막을 건너온 나는무언가를 보았다.
어쩌면 '그것'이 오아시스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앓아야 했던 신기루였는지도, 혹은 지금 어느곳에서 누군가 속삭이고 있는 '사랑'이라는 짧은 낱말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에 대해 굳이 알려고 들지 않겠다.
그대는 사막이었고 나에게는 그 사막이 온 우주로부터 바다를 불러 들이는 거대한 그리움이 되었을 뿐이다.
그대는 여전히 방대한 모래알의 사막이나,
그대의 사막을 건너온 나는 오래도록 바다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박명 薄明
Christina Rossetti (1830~1894)
제가 죽었을때
저 때문에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
제 머리맡에 그대 장미꽃도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세요
제 무덤위에 소나기와 이슬맺힌
녹색 풀들이 자라나게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잊어버리세요
저는 그 그늘을 보지 않을 거에요
저는 그 비를 느끼지 않을 거에요
고통에 찬 듯이 울어대는
나이팅게일의 노래소리 듣지 않을 거에요
뜨거나 지지않는
박명의 꿈
아마 저는 기억하든지
잊든지 하겠지요
해금 : 강은일, 첼로 : Wolfgang Schindler, 보컬 : Heike Susanne Daum
BGM :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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