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노바 바베의 바가바드기타 이야기』를 막 읽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비노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최소화하는 기타의 원칙을 실천했던 간디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나중에 인도의 수상이 된 네루와 함께 알라하바드라는 도시에 머문 적이 있다.
당시 그 집에는 수도가 있어 네루는 간디가 쓸 세숫물을 한 주전자 가지고 왔다.
네루는 인도의 정치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물을 부었다. 그들이 심각한 논의를 하는 동안,
간디가 세수를 끝내기 전에 물이 떨어졌다.
간디가 말했다.
“뭐라고요? 내가 얼굴을 마저 씻기도 전에 주전자에 있는 물을 다 써버렸단 말입니까?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나는 얼굴을 씻기 위해 한 주전자 이상의 물을 쓰지 않습니다.”
네루는 간디가 왜 흥분하는지, 왜 심각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뒤 네루는 더욱 놀랐다. 간디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우십니까?” 네루가 물었다.
“나는 너무 조심성이 없고 낭비가 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곳 알라하바드 시에는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기는 물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곳은 당신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마른 사막이 아닙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이 도시는 물이 풍족하지요.
당신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위대한 두 강으로 축복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몫은 얼굴을 씻기 위한 한 주전자의 물이 전부입니다. 더 이상은 아닙니다.”
이것은 간디를 삶을 이어나가는 비노바 바베에게 자연을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태도였다.
간디는 물 한 방울도 낭비하려 하지 않았다.
낭비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실패작 가운데 하나다.
낭비는 폭력이며, 자연에 대한 죄악이다.
뉴욕과 뉴델리 같은 현대도시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낭비가 심하다.
대량생산은 대량낭비를 부른다.
생산품의 필요성과는 상관없이 공장은 생산체계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에게 일을 계속 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한다.
우리는 땅에서 얻은 자연물을 합성품으로 만들고,
자연이 다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만들어 멋대로 내버린다.
땅을 염두에 두고 일하면 낭비란 있을 수 없다. 자연에서는 낭비가 없다.
결핍은 땅이 고갈되어 생기고 고갈은 낭비 때문에 생긴다.
자원을 다시 쓰고, 재생하며, 보충하고, 제한하며,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결핍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풍요는 자연의 법칙이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이 세상에 있지만 모든 사람이 탐욕을 부린다면 충분치 않다”고 간디는 말했다.
탐욕과 낭비는 결핍을 부른다. 관심과 절제는 풍요를 부른다.
나무를 심어 자연을 돌보는 불자였던 인도의 위대한 아쇼카 왕이 있었다.
아쇼카 왕은 모든 백성이 일생 동안 최소한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봐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치유력이 있는 나무와 열매를 맺는 나무, 장작으로 쓸 나무와 집을 짓는데 쓸 나무와 집을 짓는데 쓸 나무, 꽃을 피우는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그는 그것을 ‘다섯 그루 나무의 작은 숲’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케팔라를 걸으면서 그곳의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 때 나무를 장식하는 것은 나무를 공경한다는 상징임을 알게 되었다. 유럽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나무를 땅에서 뽑지 않고 서 있는 그대로 장식했다.
자연을 키우면 다음으로 사회를 키우게 된다. 이것은 주고받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질서를 의미한다.
이는 상호이익과 상호의존을 뜻하기도 한다.
지적이고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자원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사용된다.
이 자원은 세대를 거쳐 축적되었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호주 원주민, 인도 토착민과 아프리카 부시맨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티쉬 쿠마르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중에서
The Ravi Shankar Project (Tana Mana) - Memory of U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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